
#부력의원리발견'유레카' #정확한원주율 #원뿔,구,원기둥부피의관계 #지렛대의원리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으며 알렉산드리아 대학을 중심으로 절정기에 달한 헬레니즘 시대에서 배출된 유명한 수학자들이 있습니다.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며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 이데아 사상을 수학으로 승화시킨 유클리드,
진리와 결혼한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가 그들인데요.
그중 오늘은 헬레니즘 시대의 최고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건설
먼저 아르키메데스가 살았던 헬레니즘 시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필리포스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알렉산더의 교육을 위해 당대 그리스의 유명 철학자들 중 아리스토텔레스를 선택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된 알렉산더는 다방면에 걸쳐 배우며 영웅의 면모로 변해갔습니다.
18세 때 그리스 동맹군을 격파시키기도 하며 대왕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이집트,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정복해 가며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또한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알렉산드리아 대학을 세워 학문의 발전을 꾀했는데, 도서관이나 박물관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이 대학을 중심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창조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다른 민족의 종교나 관습을 인정하기도 하고 페르시아의 문물을 받아들여 여러 문화가 융합되도록 하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 그리스가 로마의 속국이 될 때까지의 300년간의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유레카를 외친 벌거벗은 과학자
아르키메데스 (BC 287?~212)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을 적용하고 새로운 수학 지식을 습득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유명한 유레카 일화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시라쿠사의 왕 히에론은 순금으로 왕관을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아르키메데스를 불러 내 앞에 놓인 이 왕관이 순금인지 아닌지 판단해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왕관의 순도를 확인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던 아르키메데스는 어느 날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들어가면서 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고 합니다. 유레카는 ‘알아냈다’라는 뜻인데,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유레카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물체의 부피만큼 물이 넘치는 부력의 원리를 알아냈던 것이지요.
그 당시는 벌거벗은 모습이 사실 그리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남자만이 참가할 수 있도록 성별을 알기 위해 옷을 벗고 경기를 진행하기도 했으니 말이죠.
원주율과 원의 넓이, 구의 겉넓이
그 당시 고대인들은 원의 둘레를 지름의 약 3배로 여겼습니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원주율을 3.16으로 사용하기도 했지요. 이집트 파피루스에 보면 ‘원의 넓이는 지름에서 그 1/9를 빼면 지름의 8/9이 남는다. 이것을 제곱하여라.’라고 나옵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근삿값 3.16이 됩니다.
그런데 아르키메데스는 원주율을 더욱 정밀하게 계산하지요. 어떠한 방법으로 더 정확하게 계산한 걸까요??
아르키메데스는 반지름이 1인 원을 그리고, 그 원에 외접하는 정육각형과 내접하는 정육각형을 그렸습니다. 외접 육각형은 원 바깥에 있으므로 그 길이가 원의 둘레보다 깁니다. 육각형 둘레의 길이를 지름으로 나누어 계산해 보니 원주율 값이 3과 3,46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정12각형, 24각형, 96각형을 그리면서 원의 면적에 근접해지는 다각형을 통해 원의 둘레의 차를 좁힙니다. 그 결과 3과 10/71 < π < 3과1/7을 알아냅니다. 이는 3.1408 < π < 3.1429 이지요. 아르키메데스는 <원의 측정>이라는 책에서 원주율 값이 3.1416 임을 증명했습니다.
원주율뿐만 아니라 원의 넓이는 (원둘레 × 반지름 ÷ 2), 구의 겉넓이는 (원의 넓이 × 4)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또한 원뿔의 부피: 구의 부피: 원기둥의 부피 = 1:2:3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기쁨을 만끽했다고 합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별과 우주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연구했으며, 지구상의 모래알 개수를 10의 51 제곱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아주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원리인데 그는 지렛대와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면 아무리 무거운 물건도 옮길 수 있다고 주장을 하며 “나에게 지렛대와 서 있을 자리, 그리고 지렛대 받침을 준다면 지구를 움직여 보이겠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시라쿠사가 로마군에 의해 점령당하던 날 기하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던 아르키메데스의 집에 로마군 병사가 들어와 그의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그는 로마병사가 온 줄도 모르고 “내 도형이 망가지니 물러가라.”라고 했다가 이 말에 흥분한 병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로마군 마르켈루스 장군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생전에 아르키메데스가 묘비에 적어달라고 말했던 <원기둥과 구의 부피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도형을 묘비에 새겨주었다고 합니다.
'온유쌤의 수학 노트 > 수학사와 수학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자] 플라톤(Plato)_기하학을 사랑했던 철학자 (0) | 2023.02.17 |
---|---|
[수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_천재 수학자, 철학자, 천문학자, 음악가의 비밀 (0) | 2023.02.13 |
[수학자] 탈레스(Thales)_ 논증 기하학, 철학의 아버지 (0) | 2023.02.10 |
[수학사] 고대 그리스 수학_아테네와 수학자들 (0) | 2023.02.10 |
[수학사] 숫자의 발달_ 중국의 숫자와 수의 확장 (0) | 2023.02.09 |
댓글